폴 바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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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 바르텔(1938-2000)은 미국의 영화 감독, 각본가, 배우였다. UCLA에서 영화와 연극을 전공하고 유학 후, 로저 코먼과 협력하여 컬트 영화를 연출했다. 1972년 《프라이빗 파츠》로 감독 데뷔 후, 《데스 레이스 2000》, 《프라이팬 살인》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배우로도 활동하며 《프랑켄위니》, 《유주얼 서스펙트》 등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2000년 간암으로 사망했으며, 2001년 유작인 《퍼펙트 핏》이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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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바르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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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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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38년 8월 6일 |
출생지 | 뉴욕 시 |
사망일 | 2000년 5월 13일 |
사망지 | 뉴욕 시 |
직업 | 배우, 감독, 작가 |
활동 기간 | 1968년–2000년 |
개인 정보 | |
본명 | 폴 바텔 |
출생지 | 뉴욕 시 브루클린 구 |
사망지 | 뉴욕 시 맨해튼 구 |
경력 | |
직업 | 배우, 영화 감독 |
주요 작품 |
2. 생애
바르텔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관심을 가졌고, UCLA에서 연극을 전공했으며, 장학금을 받아 로마의 첸트로 스페리멘탈레 영화 학교에서 연출을 공부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로저 코먼의 동생 진에게 고용되어 1972년에 《프라이빗 파츠》를 감독했다. 이후 로저 코먼이 제작한 영화들을 감독하며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데이비드 캐러딘,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데스 레이스 2000》은 컬트 영화로 큰 인기를 얻었다. 《캐논볼》, 《프라이팬 살인》 등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컬트 영화들을 감독하는 한편, 배우로서도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존 카펜터, 팀 버튼, 존 랜디스, 조 단테 등은 바르텔을 존경하는 감독으로 자주 언급한다.[1] 바르텔은 영화 외에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 총지휘를 맡은 《어메이징 스토리》, 의료 드라마 《시카고 호프》, 《앨리 맥빌》 등 여러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했다.[1]
2000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1]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바르텔은 UCLA에서 영화와 연극을 전공했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1년 동안 로마의 첸트로 스페리멘탈레 영화 학교에서 유학했다.[1] 그 후 미국으로 돌아와 미국 육군 통신대 화보 센터에 롱아일랜드 시티로 들어가 군 복무를 마쳤으며, 미국 정보국을 위해 영화를 제작했다.[1]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관심을 가졌으며, UCLA에서 연극을 배우고, 장학금을 받아 로마로 건너가 연출술을 배웠다.[1]
2. 2. 초기 경력
바르텔은 UCLA에서 영화와 연극을 전공했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1년 동안 로마의 첸트로 스페리멘탈레 영화 학교에서 유학했다.[1] 귀국 후, 미국 육군 통신대 화보 센터에 롱아일랜드 시티로 들어가 군 복무를 마쳤으며, 이후 미국 정보국을 위해 영화를 제작했다.[1]바르텔의 초기 영화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제작되었으며, 주로 추상적이고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한 16mm 단편 영화들이었다. 여기에는 ''Cinema Experimental''(1954), ''Non Objective Film''(1956), ''마거릿 와이팅 Sings "The Money Tree"''(1956), ''Camel Rock''(1957)과 같은 작품들이 포함되었다. 1962년에는 로마의 친토 스페리멘탈레 디 치네마토그라피아(Centro Sperimentale di Cinematografia)에 재학하면서 35mm 단편 이탈리아어 영화 ''Progetti''를 제작했다. 이후, ''The Secret Cinema''(1966)를 제작했는데, 35mm 필름으로 극도로 낮은 예산으로 자신의 자금을 들여 촬영했다.[2] ''The Secret Cinema''는 그를 서사 영화 분야의 새롭고 특이한 독립적인 목소리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는 이 영화에 이어 자신이 쓰고 연출한 또 다른 단편 영화인 ''Naughty Nurse''(1969)를 제작했다. 그는 또한 주연을 맡은 장편 영화 ''Utterly Without Redeeming Social Value''(1969)의 각본을 공동으로 썼다. 그는 브라이언 드 팔마가 감독한 ''안녕 엄마!''(1970)에 배우로만 출연했다.
바르텔이 감독한 첫 번째 장편 영화는 MGM을 위해 제작된 코미디 호러 영화 ''Private Parts''(1972)였다. 이 영화는 진 코먼이 제작했으며, 바르텔은 출연진에 포함되었다.
2. 3. 로저 코먼과의 협업
로저 코먼은 뉴 월드 픽처스를 운영하며 바르텔을 액션 영화 ''빅 배드 마마''(1974)의 보조 감독으로 고용했고, 바르텔은 작은 역할도 맡았다.이후 코먼은 데이비드 캐러딘, 실베스터 스탤론, 메리 워로노프가 출연하는 풍자 액션 코미디 영화 ''데스 레이스 2000''(1975)의 감독을 바르텔에게 맡겼다. 바르텔은 여기서도 작은 역할을 맡았는데,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하며 컬트 영화로 자리 잡았다.
코먼은 곧바로 바르텔에게 캐러딘과 함께 뉴 월드를 위해 비슷한 액션 영화 ''캐논볼''(1976)의 감독을 제안했다. 바르텔은 각본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조 단테와 마틴 스코세지 등 여러 인물들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바르텔은 "데스 레이스"에서 5000USD를 받고 1년 동안 일해 영화가 끝날 무렵 돈이 절실히 필요했고, 다른 자동차 영화인 "캐논볼"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코먼이 "'데스 레이스'가 '더 하드'하고 '더 현실적'이었다면 더 인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지만, 자동차와 경주에 관심이 없었기에 카메오와 캐릭터 속임수를 잔뜩 넣었다고 회고했다.[2]
바르텔은 뉴 월드의 다른 감독들로부터 영화에 작은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그는 론 하워드의 ''잇 마이 더스트!''(1976), 조 단테와 앨런 아쿠쉬의 ''할리우드 대로''(1976) (바르텔이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고 말한 꽤 큰 역할[2]), 조나단 카플란의 ''미스터 빌리언스''(1977), 하워드의 ''그랜드 시프트 오토''(1977), 단테의 ''피라냐''(1978), 아쿠쉬의 ''록 앤 롤 고등학교''(1979)에 출연했다. 뉴 월드 외부에서는 카플란의 ''머슬 비치의 사기꾼''(1980)과 아쿠쉬의 ''하트빕스''(1981)에 출연했다.
2. 4. 《프라이팬 살인》과 그 이후
바르텔은 리처드 블랙번과 함께 레이울 먹기(1982)의 각본을 썼고, 자금을 조달하여 워로노프와 함께 이 영화에 출연했다. 230000USD(본인과 부모가 조달)로 제작된 이 영화는 예술 영화계에서 흥행하여 1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컬트 영화가 되었다.바르텔은 샘 풀러가 연출하고 뉴 월드 출신 존 데이비슨이 제작한 ''화이트 독''(1982), ''트릭 오어 트리츠''(1982), 캐플란의 ''하트 라이크 어 휠''(1983), 그리고 아르쿠쉬의 ''겟 크레이지''(1983)에서 단역을 맡았다.
''레이울 먹기''의 성공으로 바르텔은 자신이 공동 집필하고 연출하려 했던 스크루볼 코미디 영화 ''발행 금지''(1984)의 제작 자금으로 300만달러(''레이울'' 예산의 10배)를 조달할 수 있었다. 흥행에는 실패했다.[3][4] 더 성공한 작품으로는 탭 헌터와 디바인이 출연한 ''러스터 인 더 더스트''(1985)가 있었다.
바르텔은 배우로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팀 버튼의 단편 ''프랑켄위니''(1984), 존 랜디스의 ''인투 더 나잇''(1985), 에이미 헤커링의 ''유러피안 베케이션''(1985), 그리고 ''세서미 스트리트 프레젠트: 팔로우 댓 버드''(1985)에 출연했다.
바르텔은 팀 콘웨이가 각본을 쓰고 자신이 출연한 ''롱샷''(1986)을 연출했다. 바르텔은 이 프로젝트에서 "고용된 감독"이었다고 말했다. "내 감성은 팀 콘웨이가 원하는 것과는 어떤 면에서 상반되었습니다. 저는 표면 아래의 흥미로운 것들을 찾으려 했지만, 그는 단지 더 많은 표면을 원했을 뿐입니다."[8]
그는 아르쿠쉬가 연출한 ''페임'' 에피소드에 출연했으며, 줄리 코먼이 제작하고 짐 위노르스키가 연출한 ''초핑 몰''(1986)에서 ''레이울''의 캐릭터를 다시 연기했다(위노르스키는 바르텔과 워로노프가 즉흥적으로 연기했다고 말한다[5]). 그는 버튼이 연출한 ''알프레드 히치콕 쇼''의 "The Jar" 에피소드와 영화 ''킬러 파티''(1986)에도 출연했다.
그는 자신의 각본으로 제작된 두 편의 ''어메이징 스토리'' 에피소드를 연출했으며, 두 편 모두 그가 배우로 출연했다: "Secret Cinema"(동명의 단편 영화 리메이크)와 "Gershwin's Trunk".
그는 로저 코먼이 제작한 ''멈치스''(1987), 단테가 연출한 세그먼트가 있는 ''아마존 우먼 온 더 문''(1987), ''크라임 스토리'' 에피소드, ''바하 오클라호마''(1988), 그리고 ''셰이크다운''(1988)에 출연했다.
바르텔은 ''모추어리 아카데미''(1988)를 공동 집필했지만 연출하지는 않았으며, 그와 워로노프도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는 자신이 단역을 맡은 ''아웃 오브 더 다크''(1988)의 총괄 프로듀서였다. 그는 아르쿠쉬가 연출한 ''캐디섁 2''(1988)에도 출연했다.[6]
바르텔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비벌리 힐스의 계급 투쟁''(1989)을 연출했다.[7]
그는 ''레이울 먹기''의 속편인 ''Bland Ambition''을 썼는데, 폴과 메리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게 되는 내용이었다.[8] 베스트론이 촬영 시작 10일 전 자금 지원을 철회했다.[8]
바르텔은 ''퍼커 업 앤 바크 라이크 어 도그''(1989), ''파 아웃 맨''(1990), 단테의 ''그렘린 2: 더 뉴 배치''(1990), ''댄 터너, 할리우드 탐정''(1990), 아르쿠쉬가 연출한 ''L.A. 로'' 에피소드, ''리퀴드 드림스''(1991), 그리고 ''데자이어 앤 헬 앳 선셋 모텔''(1991)에 출연했다.
바르텔은 더 코믹 스트립의 피터 리차드슨이 연출한 ''교황은 죽어야 한다''(1991)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았으며, 그레그 아라키의 ''리빙 엔드''(1992), ''Soulmates''(1992), 그리고 ''포세''(1993)에 출연했다.
''레이울 먹기''의 뮤지컬 각색은 1992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다.[9]
바르텔은 ''더 코믹 스트립 프레젠트...''의 몇몇 에피소드에 출연했으며, "Demonella"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액팅 온 임펄스'', ''테일즈 오브 더 시티'', 그리고 ''그리프''(1993)에 출연했다.
바르텔이 연출한 마지막 장편 영화는 ''셸프 라이프''(1993)였다. 연극을 바탕으로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으며, 배급에 어려움을 겪었다.[10]
2. 5. 배우 활동
원제Hi, Mom!
Private Parts
Big Bad Mama
Death Race 2000
Eat My Dust
Hollywood Boulevard
Cannonball!
Mr. Billion
Grand Theft Auto
Piranha
'Rock nRoll High School
Heartbeeps
Eating Raoul
White Dog
Trick or Treats
Get Crazy
Not for Publication
Frankenweenie
※ 감독: 팀 버튼
Into the Night
'National Lampoons European Vacation''
Follow That Bird
The Longshot
Chopping Mall
Killer Party
Munchies
Amazon Women on the Moon
Baja Oklahoma
Shakedown
Out of the Dark
Caddyshack II
Far Out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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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 Turner, Hollywood Detective
Liquid Dreams
Desire and Hell at Sunset M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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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wis & Clark & Geo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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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let